칠판을 지우지 않는 수업 — 아이들이 남긴 오답을 다음 날 다시 꺼내는 이유
수업이 끝나면 칠판을 지우는 것이 당연했습니다. 어느 날 지우개를 들다가 멈췄습니다. 칠판에는 아이들이 풀다 틀린 문제, 고쳐 쓴 흔적, 누군가 옆에 그려 넣은 그림이 그대로 있었습니다. 지우면 사라질 것들이었습니다.
사진 한 장으로 남기기
그날부터 수업 마지막에 칠판을 사진으로 찍습니다. 다음 날 수업은 그 사진을 화면에 띄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. "어제 우리가 여기서 막혔지. 오늘은 여기서 출발하자." 이 한 문장이 수업의 도입이 됩니다.
처음엔 복습 효과를 기대했습니다. 그런데 더 큰 변화는 다른 곳에서 왔습니다. 아이들이 칠판에 나와 틀리는 것을 덜 두려워하게 됐습니다. 틀린 풀이가 다음 날 "우리가 막힌 곳"으로 다시 등장하니, 틀림이 창피한 기록이 아니라 수업의 재료가 됐습니다.
오답은 지우는 것이 아니라 꺼내는 것
- 오답을 낸 아이의 이름은 부르지 않습니다. "이 풀이"라고만 합니다. 아이들은 누가 썼는지 알지만, 교사가 부르지 않으면 그것은 공동의 것이 됩니다.
- 사진 속 오답을 고치는 것은 어제 그 아이가 아니라 오늘 손을 든 아무나입니다. 고친 사람도, 틀린 사람도 같은 문제를 함께 푼 사람이 됩니다.
- 한 달에 한 번 사진을 쭉 넘겨 보여 줍니다. "우리가 이만큼 막혔고 이만큼 풀었다." 진도표보다 이 사진 묶음이 아이들에게 더 와닿습니다.
3년째 하면서 바뀐 것
저 자신이 바뀌었습니다. 예전엔 오답이 나오면 빨리 정답으로 덮으려 했습니다. 지금은 오답이 나오면 "좋다, 내일 첫 화면감이다"라고 생각합니다. 교사가 오답을 반기면 아이들도 반깁니다. 칠판을 지우지 않는 것은 사실 오답을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