지우지 않은 선
토요일 점심 무렵, 애월 작업실 책상에서 김 선생님의 인물 드로잉을 열었어요. 3기 피드백 창 옆에는 식은 커피가 있었고, 손은 자꾸 태블릿 펜으로 갔어요. 눈 위치에 비해 턱이 조금 길어 보였거든요.
예전 같으면 새 레이어를 만들었을 거예요. 눈썹과 코끝, 턱 아래에 가로선을 긋고 제가 맞다고 생각한 턱선을 진한 색으로 얹었겠지요. 빠르고 친절해 보이는 방식. 저도 답을 다 한 기분이 들고요.
그런데 그렇게 고쳐 준 그림은 다음 그림에서 다시 흔들리는 일이 많았어요. 수강생은 제 선까지 정확히 따라왔지만, 어느 간격을 보고 얼굴이 길다고 판단했는지는 남지 않았어요. 피드백을 많이 쓴 날일수록 제가 대신 그린 부분도 많았고요. 이건 좀 이상했어요.
오늘은 펜을 들었다가 내려놨어요. 그림 위에는 눈과 턱을 잇는 빈 공간에 작은 점 두 개만 찍었어요. 그리고 “얼굴 안에서 가장 길어 보이는 거리가 어디인지 먼저 찾아볼까요”라고 적었어요. 턱을 올리라는 말은 쓰지 않았어요. 원래 선도 지우지 않았고요.
이 방법이 늘 맞는지는 모르겠어요. 질문이 너무 넓으면 막막하다는 답도 받아봤거든요. 그래서 표시를 전혀 안 하기보다 시선이 머물 자리를 아주 작게 남겨요. 표시 하나와 질문 하나. 고칠 곳이 여러 군데 보여도 첫 답장에는 한 거리만 봐요. 저도 이걸 자주 못 지켜요. 피곤하면 정답선부터 긋고 싶어져서…
창밖 빛이 책상 모서리에 얇고 희게 걸렸어요. 김 선생님이 어떤 선을 옮길지는 아직 몰라요. 수정본이 오면 완성된 턱선보다 처음 선을 지우지 않고 옆에 남겨두었는지 먼저 보려고 해요. 옮긴 이유도 한 문장으로 물어볼 생각이고요. 그 흔적이 다음 얼굴을 볼 때 쓸 눈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.
조금만 더 기다려봐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