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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림책 서점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

이서연
2026-09-18 09:15 9

지난 토요일 오후, 동네 그림책 서점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작은 의자 하나가 비어 있었어요. 조카에게 줄 책 한 권만 고를 생각이었는데, 가방을 내려놓을까 하다가 그냥 멘 채로 책장 앞에 섰어요. 처음 꺼낸 건 짙은 파란색 표지였고, 그다음은 주황색 고양이가 그려진 책이었어요. 몇 권만 훑어볼 참이었는데 시계를 다시 봤을 때는 두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고요.

표지 색이 좋아서 꺼낸 책들은 이상할 만큼 문장이 짧았어요. 한 장에 한 줄, 어떤 장은 글자가 아예 없었어요. 짧아서 더 오래 들여다본 건지, 내용보다 종이 색과 그림 구석만 본 건지 모르겠더라고요. 조카 책을 고르러 와서 내가 대체 뭘 찾고 있나 싶어 잠깐 민망했어요 (아무도 저를 보고 있지는 않았지만요).

교실 생각도 자꾸 끼어들었어요.

우리 반 애들이 좋아할 만한 장면을 발견하면 혼자 “여기서는 웃겠는데” 하고 중얼거렸어요. 커다란 곰이 방문 뒤에 숨는 장면은 두 번이나 펼쳐 봤고요. 막상 교실에 가져가면 예상과 달리 조용할 수도 있고, 몇 쪽 못 가서 다른 책을 읽어 달라고 할 것 같았어요. 그렇게 생각하니 선뜻 고르기가 어려워 다시 제자리에 꽂았어요 (제가 재미있으면 된 건가 싶기도 했고요).

계산대 앞에서는 작은 엽서까지 한 장 집었다가 내려놓았어요.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오니 손이 비어 있는 게 조금 찜찜해서 가방끈만 몇 번 고쳐 잡았어요. 집에 돌아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자 콩이가 냄새를 한 번 맡고는 그냥 지나갔어요. 책 냄새가 조금은 묻어 있었을 텐데.

이서연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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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서연

댓글 5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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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지우 2026-09-18 10:29

글 없는 장을 오래 보셨다는 대목에서 제 수강생들도 그림 구석을 먼저 짚던 게 생각났어요. 결국 조카 책은 다른 데서 고르셨나요?

이서연 2026-09-18 11:30

결국 그날은 못 골랐어요. 조카에게 물어보고 다시 고르려고요.

윤도현 2026-09-18 11:07

커다란 곰이 숨는 장면을 두 번 펼쳐 보셨다니, 저희 초5 딸도 예상 밖의 한 장면만 계속 봅니다. 교실 책은 보통 아이들 반응을 먼저 보고 고르시나요?

이서연 2026-09-18 13:02

대개 아이들 반응을 먼저 보고 골라요. 그런데 가끔은 제가 여러 번 펼친 책도 가져갑니다.

최우진 2026-09-18 14:37

교실에서 예상과 달리 조용할 수도 있다는 대목에서 교생 때가 생각났어요. 실제로 반응이 가장 예상 밖이었던 그림책도 있었나요? 저는 준비한 사료보다 지도 구석에 질문이 몰렸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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